포스타입에 먼저 올렸던 글로 백업용입니다.





“헉헉 많이 늘었구나. 이 정도면 되겠어.”

“오늘도 또 해리에게 졌는데요. 뭐가 늘어요. 쳇.”



바닥에 처박히다시피 누워 있는 에그시는 해리가 내민 손을 잡고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아직 애송이에게 질 정도는 아니다. 네게 지면 은퇴를 진지하게 고려해 봐야지.”

“이제 저도 혼자 충분히 미션 성공시키고 있거든요? 근데 해리 괜찮아요? 얼굴이 너무 창백한데요?”



에그시는 대답을 듣기도 전에 자신에게로 쓰러져오는 해리를 받아내야 했다. 에그시는 급하게 멀린은 호출했고, 다행이 본부 안 훈련에서 벌어진 일이라 조치는 빨랐다. 간단한 혈액 검사를 통해 쓰러진 원인도 쉽게 찾아냈다. 포도당 수액을 맞은 해리도 곧 깨어났다.



“해리 괜찮아요?”

“내가 왜 여기 있지?”

“에그시랑 대련 후 쓰러지셨습니다.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아… 기억 나네. 왜 갑자기 쓰러진 거지?”



멀린은 해리에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반년 전 정기 검사에서도 발생하지 않았던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최근 식사습관이 불규칙적으로 바뀌었습니까?”

“식사시간은 제대로 챙긴 것 같네만. 아 시간은 제대로 챙겼는데 양은 챙기지 못한 것 같군. 아침저녁으로 발정 나는 누구 때문에 말이지.”



해리의 말에 에그시의 얼굴이 붉어졌다. 멀린도 알만하다는 듯 에그시를 째려봤다.



“저혈당입니다. 시간마다 측정해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지금 쓰러진 원인은 무리한 운동으로 인한 저혈당성 쇼크였습니다. 당뇨병 초기 일 수도 있으니 제대로 관리해야 합니다.”

“심각한 상태는 아닌 거죠?”

“네 젊고 싱싱한 몸과는 다르니 오래 함께하고 싶다면 적당히 괴롭히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해리 당분간 금주하셔야 합니다. 알코올이 주범이거든요.”



정밀검사결과 다행이 약물치료가 필요한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규칙적인 식습관과 활동에 맞지 않게 너무 적은 열량을 섭취하고 있으니 식사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 들어 채식 위주의 식사를 했던 것이 문제 인 듯 싶었다. 그리고 술은 바로 끊을 수 없으니 하루 한잔으로 이 기회에 완전히 끊어버리라는 멀린과 치열한 공방 끝에 타협할 수 있었다.





“해리, 이제 그만 일어나요.”



저혈압으로 늘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 해리를 에그시가 달래듯 깨웠다. 늘 꼿꼿한 신사가 흐트러져 버리는 유일한 시간이니 아침마다 에그시의 주니어가 자기 주장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에그시는 다시 피어 오르는 욕망을 꾹 눌러 담고 해리를 일으켜 앉혔다.



“여기서 더 늦으면 오늘도 지각이에요. 아침 식사는 꼭 하고 가야 되니까 얼른 씻고 나와요.”



해리는 조금 더 자려는 자신을 떼어내고는 입을 맞추려는 에그시에게 짜증을 냈다. 그러나 에그시의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열리는 입안으로 불쑥 딱딱한 무언가가 들어왔다. 체리맛 사탕이었다. 해리는 억지로 과일맛을 낸 사탕이 마음에 들지 않아 뱉으려고 했지만 뒤 이어 자신의 입안으로 침범해온 에그시의 혀로 인해 뱉어낼 수 없었다. 한참을 물고 있었는지 에그시의 혀에서도 체리맛이 낫다. 같은 맛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에그시의 것은 더 맛있게 느껴져 해리는 에그시의 몸에 매달려 한껏 에그시의 입을 탐했다.



“여기까지예요. 더 하면 오늘도 제 주니어가 해리안으로 들어가고 싶을 테니 그만하고 얼른 씻고 내려와요.”

“특별히 먹어준다면?”

“뽀킹. 진짜 나만 억울하다니까. 이렇게 유혹해대면서 멀린 앞에선 다 내 탓인 척하고. 진짜 안돼요. 얼른 씻고 내려와요.”



씻고 내려온 해리의 눈에 보이는 음식들은 전형적인 영국의 식사였다.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베이컨, 소시지, 블랙푸딩, 계란프라이, 베이크드빈스 그리고 잼과 버터가 듬뿍 올라가 있는 토스트까지. 푸른색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식탁이었다.



“날 살찌워 잡아먹을 생각이냐?”

“해리가 매일 풀 쪼가리나 먹으니까 저혈당같은게 생기는 거 라구요. 영국인의 아침식사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죠. 얼른 먹어요. 오늘도 늦으면 또 저만 멀린한테 혼난다구요.”

“매일 이렇게 먹다간 고혈압으로 더 먼저 죽겠구나. 오늘은 차린 정성이 있으니 그냥 먹겠다만 내일부터는 원래 먹던 대로 먹었으면 좋겠구나. 헬렌이 저녁에 미리 준비해 놓은 거면 난 충분하단다. 그 동안도 문제 없었고. 제대로 잘만 챙겨먹었으면 말이지.”

“알겠어요. 그래도 오늘만은 제가 먹자는 대로 먹어요. 하루니까 그건 괜찮죠?”



시무룩해져 축 처져 있는 에그시의 얼굴을 보자니 해리는 알겠다고 허락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허락이 오늘 하루 자신에게 비극을 가져올 거라고는 해리도 예측하지 못했다. 에그시의 입맛에 맞춰진 달고 짠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자 에그시는 바로 또 디저트를 내왔다. 트라이플이었다. 스폰지 케익에 생크림과 커스터드 크림, 여러 가지 과일, 잼, 초콜릿에 럼주까지 잔뜩 들어간 디저트였다. 영국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디저트라지만 단 음식들을 싫어하는 해리는 잘 먹지 않는 음식이었다.



“약속했으니 다 드셔야 돼요.”



보통 때였다면 쳐다보지도 않고 일어났을 테지만 방금 한 약속이 있어서 해리는 울며 겨자 먹기로 큰 컵에 담겨 있는 트라이플을 전부 먹어야만 했다. 에그시의 음식 공격은 이제 시작이었다. 본부에 나가자마자 에그시는 설탕이 잔뜩 들어간 밀크티와 세몰리나 푸딩을 들고 찾아왔다.





“우선 혈당 체크부터 할게요.”



에그시는 해리의 검지손가락 끝을 찔러 피를 낸 뒤 측정기에 올려두었다.



“아침을 그렇게 먹었는데도 70에서 살짝 낮아요. 그러니까 오늘 티타임은 제가 가져온 걸로 해요.”

“분명 나와 같이 나왔는데 그런 건 언제 준비한 건지 모르겠구나.”

“푸딩은 멀린걸 살짝? 나중에 더 맛있는 걸로 사다 주면 되니까요.”



해리는 에그시가 내온 밀크티를 한 모금 맛보더니 금세 얼굴을 찌푸렸다. 에그시 입맛에 맞춘 건지 밀크티는 보통의 밀크티보다도 훨씬 더 달았다.



“이렇게 단 차와 저걸 같이 먹으라는 건가?”

“단 푸딩과 깔끔한 홍차가 더 어울린다는 건 편견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냥 먹어줘요.”

“네가 꼭 그걸 먹이고 싶다면 오늘 아침 침대에서처럼 이면 좋겠는데.”

“예스! 예스, 해리.”



기쁨 가득한 얼굴로 에그시는 푸딩을 크게 한 숟가락 입에 떠 넣고 해리에게 달려들었다. 부드러운 푸딩이 입안 가득 넘어왔다. 그 다음 푸딩보다 부드럽고 달콤한 에그시의 혀가 얽혀 들어왔다. 해리는 그것이 단맛을 씻어줄 탄산수라도 되는 것처럼 빨아들였다. 이미 푸딩은 전부 녹아 들어가 입안에 남아 있는 것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둘의 키스는 끝나지 않을 것처럼 계속 되었다.



“크흠… 직장에서는 좀 자제해 달라고 늘 말씀 드렸을 텐데요. 아서.”

“자네가 노크도 하지 않고 들어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제가 갤러해드도 아니고 설마요. 여러 번 두들겼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소리가 없길래 들어온 것뿐 입니다. 급하게 처리해야 할 서류만 놓고 가려고 말이죠.”

“그랬군. 그럼 주고 가보게.”

“제 간식이 어디 갔나 했더니 여기 있었군요. 어떻게 된 거지, 에그시?”

“하하… 다음에 더 맛있는 걸로 사다 드릴게요. 그건 해리 입술보다 맛이 없더라구요. 그럼 해리 전 미션이 있어서 이따 저녁때 봐요.”



에그시는 멀린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얼른 아서의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멀린의 남은 잔소리들은 모두 해리가 감당해야 했지만 멀린에게 오랜 시간 단련된 해리는 처리해야 할 업무를 보면서 잔소리를 스킵 할 기술이 넘쳤다.





제 멋대로이긴 했지만 하루 종일 자신의 식사를 챙기려 노력한 에그시가 기특해 오늘은 특별한 저녁을 만들어주기 위해 해리는 마트까지 들려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집안으로 들어가자 이미 음식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해리 지금 왔어요? 잠시만 기다려요. 거의 다 되었으니까 옷 갈아 입고 내려오세요.”



에그시의 말대로 옷을 갈아 입고 내려오자 아침과 달리 식탁 위에는 해리가 좋아할 만한 것들로 가득했다. 신선한 샐러드에, 야채수프, 그리고 잘 익은 스테이크에 와인까지. 이런 음식을 에그시가 차려 준 것은 처음이었다.



“어… 해리가 만들어주는 것처럼은 못했어요. 헬렌이 조금 도와주긴 했지만 거의 내가 다 했어요. 맛이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그래도 오늘 열심히 준비한 거니까 맛있게 먹어줘요.”

“그 동안 먹어 왔던 것 중에 가장 맛있어 보이는구나. 고맙다, 에그시.”



해리는 수프부터 샐러드, 스테이크를 먹을 때마다 음식에는 손대지 않고 해리의 손과 입만 바라보고 있는 에그시에게 맛있다는 말을 계속 해주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맛있었다. 해리는 남김없이 에그시가 준비한 음식들을 모두 먹었다.



“단 음식 먹는 해리가 보고 싶었는데, 오늘 거절하지 않고 모두 먹어줘서 고마워요.”

“에그시,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줄 알았으면 진작 먹어줄 걸 그랬구나. 그래도 다음부터는 한번에는 말고 조금씩 했으면 좋겠는데.”

“진짜 다음에 또 같이 먹어줄 거예요?”

“네가 먹여주는 거라면 가끔씩은 괜찮을 것도 같구나.”

“물론이죠! 좋아요. 아 그리고 하나 더 남았어요. 잠깐만요.”



에그시가 주방에서 들고 나온 것은 잘 구워진 크림 브륄레였다. 단 것들을 싫어하는 해리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디저트. 비교적 만들기 쉬운 디저트였지만 입맛 까다로운 해리가 먹는 것은 단 한군데의 디저트가게에서 파는 것 뿐이었다. 에그시는 며칠 전부터 가게에 부탁해 크림 브륄레 만드는 법을 배웠고, 간신히 혼자서도 그 비슷한 맛을 내는데 성공했다. 한 입 먹어본 해리는 놀란 눈으로 에그시를 바라봤다. 너무 달지 않으면서도 고급스러운 단맛을 내는 크림 브륄레였다.



“어때요?”

“맛있구나. 내가 좋아하는 맛이야. 어 그건 나도 맛을 내기 힘들었는데 어떻게 한 거지?”

“그건 비밀이에요. 아무도 안 가르쳐 주기로 약속 했거든요. 대신 제가 자주 만들어 줄게요.”

“굿 보이. 오늘은 상을 줘야겠는데?”

“하고 싶은 거 다 해도 되요?”

“뭐든지.”

“일단은 여기서부터요.”



다음날, 멀린은 제대로 걷기도 힘들어 보이는 창백한 얼굴의 해리와 반짝반짝 빛나는 에그시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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