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기랄!!!
해리는 애꿎은 병실의 침대만 주먹으로 두들길 뿐이었다. 담당의도 간호사도 거동이 불편한 환자하나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참으로 원망스러웠다. 물론 그들의 잘못은 아니다. 그들도 6개월만에 깨어나 재활하고 이제 막 걷기 시작한 환자가 도망갈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을테니. 잘 걷지도 못하는 환자는 제 감시만으로도 충분하니 다른 감시는 필요없다고 킹슬리를 설득한것도 해리 자신이었다.
스네이프는 아득해지는 정신을 다잡았다. 스피너즈엔드로 돌아가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병원을 빠져나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몇달간의 병원생활로 언제 자신이 혼자가 되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자신의 소지품은 지팡이와 마법약, 그리고 몇몇 마법 물품만 빼고 모두 병실의 사물함 안에 그대로 들어있었다. 스네이프는 지갑의 솔기를 뜯어 아무도 모르게 숨겨놓은 머글지폐를 꺼내들었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숨겨놓았던 것을 이렇게 사용할 줄이야. 그리고는 모든 일이 일사천리였다. 머글들의 튜브를 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스피너즈엔드 근처까지 도착했다. 다만 문제는 갑자기 억수로 쏟아져 내리는 비와 고작 몇시간만에 퍼져버린 자신의 몸뚱아리였다. 차가운 비에 몸이 빠르게 식어갔고, 머리도 어질어질해졌다. 하지만 무슨일이 있어도 오늘 모든것을 끝내야만 했다.
저 멍청한 포터가 더 이상 바보같은 짓거리를 하지 않도록... 그리고... 그리고 자신 또한 그 멍청한 짓거리에 휘말리지 않도록... 걸어서 20분 남짓이면 될 길이 너무도 멀었다.
이곳 저곳을 쑤시고 다니던 해리에게 킹슬리의 전언은 무척이나 반가운 것이었다.
- 방금 전 스피너즈엔드 스네이프의 집에서 침입자가 있다는 알람이 있었다고 하네.
해리는 자신을 끝까지 배려해준 킹슬리가 고마웠다. 오늘 하루만은 그가 사라졌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반드시 찾아내겠다고. 그리고 가장 먼저 향한 곳이 스피너즈엔드 였는데... 해리는 지체하지 않고 그의 집 근처로 순간이동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듯 쏟아지는 비에 이곳 스피너즈엔드는 더욱 더 음울해 보였다. 그러나 스네이프가 반드시 있을거라고 생각한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 도대체 어디 있는거야!
해리는 점점 초조해져갔다. 안그래도 여론이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자신이 아무리 무죄임을 주장해도 스네이프가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그는 반드시 아즈카반에 수감될 터였다. 거기다 병원을 탈출한것이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오늘 하루... 킹슬리도 자신이 눈감아 줄 수 있는건 오늘 하루 뿐이라고 했다. 해리는 제 마음도 모르고 늘 이렇게 멋대로인 스네이프가 못마땅해 신음같은 한숨을 내뱉었다.
스네이프는 커다란 나무등걸에 기대어 앉아 잠시 눈을 감았다. 언제나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했던 그 끔찍한 집에서 마지막을 맞기는 싫었다. 하지만 릴리와의 행복한 추억이 남아 있는 이곳이라면...
스네이프는 마침내 들고 온 병의 뚜껑을 열었다. 이 약이라면 아프지않게 자신을 죽음으로 이끌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 시도는 약병이 입술에 닿기도 전에 누군가에 의해 저지되었다. 비를 너무 많이 맞았는지 코앞에 있는 남자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병에서 냄새를 맡아본 뒤 바로 저멀리로 던져버렸다.
- 미쳤어요? 내가... 내가 어떻게 당신을 살렸는데! 어떤 마음으로 깨어난 당신을 돌봐왔는데!!! 왜... 어째서!
남자... 아니 해리는 뒷말을 더는 잇지 못했다. 그가 왜 죽으려 하는지 해리 자신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게 말이 되어 입밖으로 꺼내진다면 거죽밖에 남지않은 그가 정말로 자신을... 그리고 세상을 영영 져버릴것 같았다.
해리는 방금 전 스네이프의 모습을 떠올렸다. 펜시브에서 봤던 나무에 기대 앉아있는 스네이프는 금방이라도 사라질것처럼 희미해 보였다. 주변의 배경보다도 흐릿한 그의 존재감이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그가 이미 자신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 죽어버린 사람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릴리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죽지못해 살아왔다는 것도... 그러면... 그렇다면 앞으로도 자신을 위해 남은 생을 살아가면 안되는걸까?
- 스네이프... 교수님...
아니 이게 아니었다.
- 세베루스...
그가 깨어났을 때부터 부르고 싶었던 이름...
- 세베루스... 내 어머니 대신 내가 당신의 살아가는 이유이면 안되는 건가요? 내가 죽지못할 이유가 아니라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순 없는거예요? 당신이 원하는게 나의 초록눈 뿐이라면 당신에게 전부 드릴테니 대신 영원히 내곁에 있어줄 순 없어요?
해리는 스네이프의 공허한 눈에 그동안 내뱉고 싶었지만 마음속에서 결코 꺼낼 수 없었던 말을 내뱉었다.
- 그게...
그리고 드디어 영원히 열리지 않을거 같았던 스네이프의 입이 움직였다.
- 그게... 나에게 오늘이 마지막날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스네이프의 아주 작은 목소리가 해리의 귓가에 천둥처럼 울려퍼졌다.
- 젠장!!! 제기랄 당신은 어째서 매번!
해리는 스네이프의 멱살을 잡고 번쩍 일으켜 세웠다. 오랜이간 병실에만 있던 몸은 성인 남성의 몸이라기에 너무나도 가벼웠다. 순식간에 일으켜 세워져 나무기둥에 밀쳐진 스네이프가 연신 마른 기침을 내뱉었다. 해리는 기침이 터져나오는 보랏빛 입술에 거침없이 자신의 입술을 부딪혀갔다. 거칠기 짝이 없는 얇은 입술은 너무나도 차가워 해리는 자신의 온기를 모조리 전해줄것 마냥 스네이프의 입을 탐했다. 그리고 감겨진 스네이프의 눈꼬리에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것이 맺혔다 떨어져 내렸다.
당신이 뭐라시든 저는 당신의 영혼이 떠나고 남은 육신이라도 붙잡아 영원히... 영원히 사랑하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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